역사

10.26 사건의 정치적 의미와 영화적 재현 : 김재규 45년 만의 재심

꿀깨비 2025. 7. 16. 17:00
반응형

10.26 사건의 정치적 의미와 영화적 재현: 김재규 45년 만의 재심

 

1979년 10월 26일, 중앙정보부장 김재규가 박정희 대통령을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18년간 지속된 박정희 정권의 종말을 알리는 역사적 순간이었으며, 현재 2025년 7월, 김재규의 재심이 45년 만에 시작되면서 다시 한번 주목받고 있다. 이 사건은 단순한 암살사건을 넘어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정치적 전환점이자 민주화 과정의 복잡한 이정표로 평가되고 있다.

반응형

10.26 사건의 배경과 원인

유신체제의 모순과 부마항쟁

 

10.26 사건은 갑작스럽게 발생한 것이 아니라 유신체제의 구조적 모순이 누적된 결과였다. 1972년 10월 17일 선포된 유신체제는 박정희의 영구집권을 위한 독재 체제였다. 이 체제는 통일주체국민회의라는 간선제를 통해 대통령을 선출하고, 대통령에게 막강한 권력을 집중시킨 권위주의 체제였다.

 

1979년 상황은 더욱 심각했다. YH 무역 여공 농성사건, 김영삼 신민당 총재 제명 사건, 그리고 부마항쟁 등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유신체제에 대한 국민적 반감이 극에 달했다. 특히 부마항쟁은 1972년 유신체제 등장 후 첫 번째 대규모 민중항쟁이었으며, 이는 10.26 사건의 직접적인 도화선이 되었다.

반응형

권력 내부의 갈등

김재규와 차지철 경호실장 사이의 권력 갈등도 중요한 배경이었다. 차지철은 1974년 육영수 여사 저격사건 이후 경호실장에 임명되어 박정희 대통령을 독점하려 했다. 그는 대통령에 대한 접근을 통제하고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으며, 이로 인해 김재규와 심각한 마찰을 빚게 되었다.

 

김재규는 부마항쟁 현장을 직접 시찰한 후 박정희에게 "정치를 대국적으로 하십시오"라고 건의했으나, 박정희와 차지철의 강경 대응 방침에 좌절했다. 그는 부마항쟁이 전국적인 민중봉기로 확산될 위험성을 인식했지만, 유신체제의 강경 노선은 변하지 않았다.

반응형

김재규의 살해 이유와 준비 과정

다양한 동기 해석

 

김재규의 박정희 살해 동기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해석이 존재한다. 김재규 본인은 재판에서 "유신독재를 청산하기 위한 거사"라고 주장했으며, 자신의 행위를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혁명으로 규정했다. 그는 옥중 수양록에서 "1972년 10월 유신과 더불어 이 나라 자유민주주의는 아무 까닭 없이 박정희 대통령 각하의 영구집권을 위해서 말살되고 말았다"고 기록했다.

 

하지만 다른 해석들도 있다. 일부에서는 김재규가 차지철과의 권력 투쟁에서 밀린 상황에서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는 설을 제기한다. 또한 미국의 개입설도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이완범 교수는 "10.26 사태는 김재규와 미국의 합작품"이라고 주장하며, 윌리엄 글라이스틴 주한 미국대사가 사건 한 달 전 김재규와 만나 정권 교체를 논의했다고 밝혔다.

반응형

준비 과정의 실체

김재규의 옥중 수양록에 따르면, 그는 1972년 유신 직후부터 7년간 거사를 준비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1974년과 1975년, 1979년 4월에도 권총을 품에 안고 결행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고 기록했다. 이는 단순한 우발적 범행이 아닌 장기간의 계획된 행동이었음을 시사한다.

 

흥미롭게도 김재규는 장준하와의 연관성도 제기된다. 장준하의 장남 장호권에 따르면, 장준하는 1975년 8월 15일을 D데이로 하는 거사를 준비했으며, 이 과정에서 김재규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다고 한다. 장준하가 1975년 의문사한 후, 김재규는 혼자서 거사를 준비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반응형

10.26 사건의 결과와 역사적 의미

유신체제의 종말과 새로운 독재의 시작

 

10.26 사건은 18년간 지속된 박정희 정권의 종말을 가져왔다. 하지만 이는 곧바로 민주화로 이어지지 않았다. 사건 직후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가 12.12 군사반란을 일으켜 권력을 장악했다. 전두환은 10.26 사건 수사를 담당한 합동수사본부장으로서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연행하며 군부를 장악했다.

 

김재규는 1979년 12월 20일 1심에서 사형 선고를 받았고, 1980년 5월 24일 사형이 집행되었다. 재판 과정은 극도로 신속했으며, 1심 16일, 항소심 6일 만에 종결되었다. 이는 신군부가 김재규를 통해 정당성을 확보하려 했음을 보여준다.

반응형

정치적 의미와 재평가

10.26 사건의 정치적 의미는 복합적이다. 한편으로는 유신독재를 종식시킨 계기가 되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운 군사독재의 빌미를 제공했다. 김재규의 여동생 김정숙은 재심에서 "오빠가 막지 않았다면 우리 국민 100만명 이상이 희생됐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김재규의 행동이 더 큰 유혈사태를 막았다는 관점을 제시한다.

 

현재 진행 중인 재심에서는 당시 군사재판의 절차적 정당성과 김재규에 대한 고문 여부 등이 주요 쟁점이 되고 있다.재판부는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단 소속 수사관들이 피고인을 재심 대상 사건으로 수사하면서 수일간 구타와 전기 고문 등 폭행과 가혹행위를 했다"고 인정했다.

반응형

10.26 사건의 영화적 재현

대표적인 영화 작품들

 

10.26 사건은 여러 영화와 드라마로 제작되었다. 가장 대표적인 작품은 임상수 감독의 <그때 그 사람들>(2005)과 우민호 감독의 <남산의 부장들>(2020)이다.

 

<그때 그 사람들>은 블랙코미디 장르로 10.26 사건 당일 24시간을 그렸다. 백윤식이 김재규 역할을, 한석규가 중앙정보부 요원 역할을 맡았다. 이 영화는 사건에 휘말린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에 주목하며, 권력의 허상을 풍자적으로 그렸다.

 

<남산의 부장들>은 사건 발생 40일 전부터의 상황을 다뤘다. 이병헌이 김재규를 모델로 한 김규평 역할을 맡았으며, 권력 내부의 갈등과 김재규의 심리적 변화에 초점을 맞췄다. 이 영화는 김재규의 행동을 단순한 우발적 범행이 아닌 권력기구 내 갈등의 결과로 해석했다.

반응형

영화와 실제 사건의 비교

두 영화는 서로 다른 관점에서 10.26 사건을 해석했다. <그때 그 사람들>은 사건 자체보다는 권력 주변의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권력의 허상을 드러냈다. 반면 <남산의 부장들>은 김재규 개인의 심리적 갈등과 권력 구조의 모순을 부각시켰다.

 

실제 사건과 비교할 때, 두 영화 모두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하되 영화적 각색을 가했다. <남산의 부장들>의 경우 원작자 김충식이 "80%는 역사적 팩트, 20%는 영화적 각색"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인물들의 이름을 바꾸고 일부 상황을 재구성했지만, 전체적인 사건의 흐름과 배경은 실제와 부합한다.

 

MBC 드라마 <제5공화국>(2005)에서도 10.26 사건이 다뤄졌다. 이 드라마는 사건 이후 12.12 군사반란과 전두환 정권 등장까지를 연결하여 그려냈다.

반응형

45년 만의 재심과 현재적 의미

재심의 쟁점들

 

2025년 7월 16일 시작된 김재규 재심에서는 여러 쟁점이 제기되고 있다. 첫째, 1979년 10월 27일 선포된 비상계엄의 위법성이다. 변호인단은 박정희 사망으로 인한 비상계엄이 위헌·위법하다고 주장했다. 둘째, 민간인이었던 김재규에 대한 군사재판의 적법성 문제이다. 셋째, 김재규에 대한 고문과 가혹행위 문제이다.

반응형

현재적 의미와 교훈

김재규 재심은 단순한 과거사 재조명을 넘어 현재적 의미를 갖는다. 변호인단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과 45년 만의 데자뷔"라며 비상계엄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이는 10.26 사건이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한 교훈을 제공함을 보여준다.

 

또한 이 재심은 사법부의 과거 판결에 대한 반성의 기회이기도 하다. 김정숙은 "이번 재심이 대한민국 사법부 최악의 역사를 스스로 바로잡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권위주의 시대 사법부의 독립성 문제를 다시 한번 환기시킨다.

반응형

결론

10.26 사건은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이 사건은 유신독재를 종식시켰지만 동시에 새로운 군사독재의 시작점이 되기도 했다. 김재규의 행동에 대한 평가는 여전히 논쟁적이지만, 그가 유신체제의 모순과 한계를 인식하고 있었다는 점은 분명하다.

 

영화를 통한 10.26 사건의 재현은 이 사건이 갖는 복합적 의미를 다양한 관점에서 조명했다. <그때 그 사람들>과 <남산의 부장들>은 각각 풍자와 심리 드라마의 형식으로 권력의 본질과 개인의 선택을 탐구했다.

 

45년 만에 시작된 재심은 10.26 사건에 대한 새로운 평가의 기회를 제공한다. 이는 단순한 과거사 정리를 넘어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가치를 다시 한번 확인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김재규의 "정치를 대국적으로 하십시오"라는 마지막 말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메시지로 남아있다.

반응형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