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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리뷰

사탄탱고 -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의 묵시록적 걸작에 대한 심층 분석

by 꿀깨비 2025. 10.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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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탄탱고 -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의 묵시록적 걸작에 대한 심층 분석

 

2025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헝가리의 거장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의 대표작 사탄탱고는 현대 문학사에서 가장 강렬하고 독창적인 작품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1985년에 출간된 이 데뷔작은 공산주의 체제가 붕괴되어가던 헝가리의 한 해체된 집단농장 마을을 배경으로, 절망과 희망 사이에서 허우적거리는 인간 군상의 모습을 독특한 문체와 구조로 그려낸다.

 
Abandoned Soviet collective farm buildings with dry grass and cloudy s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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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의 배경과 시대적 맥락

사탄탱고는 1980년대 헝가리, 공산주의가 몰락해가던 시기를 배경으로 한다. 해체된 집단농장의 마을에는 가난과 불신의 늪에 빠진 십여 명의 주민들만이 남아 무기력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이 작품이 더욱 주목받는 이유는 동구 공산권이 실제로 해체되기 이전인 1985년에 발표되었다는 점이다. 작가가 예견한 몰락은 당시 체제에 대한 정치적 저항의 표현이었으며, 동시에 희망하는 인간이라는 보편적 주제를 다룬 문학으로 남았다.

 
A narrow dirt road winds through a semi-abandoned Eastern European village with old brick walls and traditional houses 

작품의 배경이 되는 마을은 공장이 문을 닫고 가축들은 팔려나간 뒤 황폐해진 곳이다. 끝없는 가을 장마가 내리고, 진흙과 쇠퇴의 냄새가 가득한 이곳에서 주민들은 삶의 의미를 잃은 채 표류하고 있다. 이러한 물리적 황폐함은 주민들의 정신적, 영적 몰락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독창적인 서사 구조: 탱고의 스텝

사탄탱고의 가장 독특한 특징 중 하나는 탱고의 춤사위를 모방한 서사 구조다. 탱고가 앞으로 여섯 스텝, 뒤로 여섯 스텝을 밟는 것처럼, 이 소설은 1부에서 1장부터 6장으로 진행된 후, 2부에서는 역순으로 6장부터 1장으로 진행되며 하나의 원을 이룬다. 이러한 순환 구조는 고통의 악순환, 영원한 되풀이를 경이롭게 묘사한다.

 
Silhouette of a tango dance couple in a dramatic pose, highlighting the passion of the d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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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장은 서로 다른 등장인물의 시점에서 같은 시간대의 사건들을 보여주며, 독자는 점진적으로 전체 그림을 파악하게 된다. 이는 마치 퍼즐 조각을 맞추듯 서사를 재구성하는 과정이며, 시간이 정체되거나 반복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소설의 마지막 장 제목은 "원이 닫힌다"이지만, 실제로는 원이 완전히 닫히는 것이 아니라 나선형으로 계속 이어진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심장하다.

이리미아시: 거짓 예언자이자 구원자

작품의 중심에는 이리미아시라는 카리스마 넘치는 인물이 있다. 1년 반 전에 죽은 것으로 알려졌던 그가 마을로 돌아온다는 소문이 돌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주민들은 이리미아시를 거의 메시아적 인물로 여기며, 그가 절망적인 삶에서 벗어날 출구를 제시해줄 것이라 믿는다.

 
옛 동유럽 마을의 낡고 버려진 골목길 모습 

하지만 이리미아시는 실제로는 정부의 밀고자이자 사기꾼이다. 그는 압도적인 카리스마와 설득력 있는 언변으로 주민들을 조종하며, 그들이 모아둔 돈을 갈취하고 각자를 다른 지역의 감시원으로 파견한다. 그는 전체주의 국가, 사탄의 물질적 형태, 혹은 파시스트 자본주의 국가의 예고로 해석될 수 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이리미아시가 보여주는 이중성이다. 그는 대중 앞에서는 희망을 이야기하지만, 동료 페트리나와 단둘이 있을 때는 극단적인 허무주의를 드러낸다. "우리는 영원히 갇혔어. 완전히 파멸했지.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게 최선이야"라고 말하며, 심지어 신의 존재도 부정한다. 그럼에도 그는 주민들에게 희망을 주고, 그들을 이끌어간다. 이러한 모순은 작품의 복잡성을 더한다.

에스티케의 비극: 순수의 파괴

에스티케는 작품에서 가장 비극적이고 상징적인 인물이다. 열 살 정도의 어린 소녀인 그녀는 마을 주민들로부터 무시당하고 학대받는다. 오빠는 그녀를 속여 돈을 빼앗고, 다른 어른들도 그녀의 존재를 거의 인식하지 못한다.

 
햇빛이 비치는 오래된 나무 헛간 내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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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티케는 자신의 무력함과 분노를 자신보다 약한 존재인 고양이에게 전가한다. 악명 높은 고양이 학대 장면에서 그녀는 고양이를 거칠게 다루고, 결국 쥐약을 섞은 우유를 먹여 죽인다. 이 장면은 작품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이지만, 동시에 가장 핵심적인 장면이기도 하다.

 
거미줄에 맺힌 빗방울이 반짝이는 모습 

에스티케의 행동은 존재의 위계질서를 보여준다. 자신이 당한 학대를 자신보다 약한 존재에게 되풀이하는 것이다. "나는 너한테 원하는 걸 할 수 있어", "나는 너보다 강해", "네가 죽어도 슬프지 않을 거야"라는 그녀의 말은 어린아이답지 않은 세계에 대한 확고한 이해를 보여준다.​​

고양이를 죽인 후, 에스티케는 같은 쥐약을 먹고 자살한다. 그녀는 고양이의 시체를 안고 폐허가 된 교회로 가서 죽음을 맞이한다. 이 비극적 사건은 이리미아시가 주민들을 완전히 장악하는 계기가 된다. 그는 에스티케의 죽음을 이용해 주민들의 죄책감을 자극하고, 자신의 계획에 따르도록 조종한다.

의사: 관찰자이자 서술자

작품에서 또 다른 중요한 인물은 의사다. 그는 창문 너머로 마을 주민들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인물로, 일종의 감시자이자 연대기 작가다. 의사는 비대한 몸과 느린 움직임으로 거의 외출을 하지 않으며, 쌍안경으로 이웃들을 감시하고 각자에 대한 방대한 기록을 남긴다.

 
Interior of an old wooden barn with rustic stalls and farm equip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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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의 역할은 작품의 서사 구조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밝혀지듯이, 의사야말로 이 이야기의 서술자다. 병원에서 돌아온 의사는 텅 빈 마을에서 현실에 구속받을 필요가 없다는 깨달음을 얻고, 자신이 현실을 창조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사탄탱고의 첫 페이지를 쓰기 시작한다.

이는 작품이 단순히 체제 비판이나 묵시록적 알레고리를 넘어서, 물질적·영적 궁핍 속에서 예술이 창조되는 과정에 대한 메타픽션임을 보여준다. 예술은 그러한 환경을 초월하지 못하지만, 그 실패 자체가 예술작품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의사는 또한 감독의 대리인으로 볼 수 있다. 벨라 타르의 긴 롱테이크처럼, 의사는 멀리서 세계를 관찰하며 모든 세부사항을 묘사하되, 그것을 바꾸려 하지 않는다. 작품의 마지막 장면에서 의사는 종소리를 듣고 그것을 조사하기 위해 나서지만, 결국 창문을 막아버림으로써 현실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세계로 물러난다.

크러스너호르커이의 독특한 문체

사탄탱고의 문체는 작가의 트레이드마크라 할 수 있는 긴 문장들로 구성되어 있다. 각 장은 단락 구분 없이 하나의 긴 단락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문장들은 페이지를 넘어 계속 이어진다. 크러스너호르커이는 짧은 문장이 인위적이며, 사람들은 실제로 거의 짧은 문장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비 내리는 어두운 밤의 거리 풍경, 젖은 포장도로와 가로등 불빛이 반사되어 분위기 있는 모습 

"마침표는 인간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신에게 속한 것"이라는 그의 말처럼, 그의 문장들은 쉼표로 연결되며 끝없이 흐른다. 이러한 문체는 의식의 흐름을 담아내며, 생각과 대화, 묘사가 하나로 어우러진다. 한 문장 안에서 여러 일들이 일어나며, 마치 작은 소설처럼 기능한다.

조지 시르테스의 영어 번역은 이러한 크러스너호르커이의 독특한 문체를 충실히 재현하려 노력했으나, 일부 비평가들은 번역 과정에서 원작의 뉘앙스와 톤이 일부 손실되었다고 지적한다. 그럼에도 시르테스의 번역은 크러스너호르커이를 영어권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주요 테마: 배신, 허무주의, 그리고 희망의 부재

사탄탱고는 여러 층위의 테마를 다룬다. 가장 명백한 것은 배신의 테마다. 소설 첫 장부터 푸타키와 슈미트 사이의 배신이 드러나며, 이는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모티프가 된다. 주민들은 서로를 믿지 못하며, 각자 돈을 갖고 도망칠 계획을 세운다. 이리미아시는 이러한 불신을 이용해 주민들을 조종한다.

 
A serene rainy countryside road with reflections and lush green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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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무주의는 작품의 또 다른 핵심 테마다. 이리미아시는 "나와 벌레 사이에, 벌레와 강 사이에, 강과 그 위로 외치는 목소리 사이에 아무런 차이가 없다. 아무런 의미나 뜻도 없다"고 말한다. 이는 존재론적 공포와 의미의 부재를 드러낸다.

동시에 작품은 희망의 역설을 탐구한다. 주민들은 가난한 사람들이 흔히 그러듯, 더 나은 미래에 대한 상상으로부터 위안을 얻는다. 그러나 이러한 희망은 끊임없이 배신당하며, 결국 그들을 더 깊은 절망으로 이끈다. 번역자 조원규는 해설에서 "작품이 궁극적으로 그리고자 한 것은 희망하는 인간"이라고 말하지만, 이는 아이러니하게도 희망이 얼마나 허약하고 쉽게 조작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종교적·묵시록적 상징

작품 전반에는 종교적이고 묵시록적인 상징들이 가득하다. 소설은 종 없는 종소리로 시작하는데, 마을 근처에는 종이나 종탑이 있는 예배당이 없다. 이는 초자연적이고 불길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거미줄은 작품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또 다른 중요한 상징이다. "거미들이 마지막 공격을 감행했다. 거미들은 술병과 유리잔, 찻잔과 재떨이에 느슨하게 거미줄을 드리웠고, 테이블 다리와 의자 다리를 가느다란 실로 은밀히 연결했다"는 묘사는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으며, 누구도 이 그물망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암시한다.​​

 
Rain droplets enhance the intricate pattern of a spider web in close-up view 

이리미아시 자신도 "그 거대한 거미줄, 나 이리미아시가 짜고 특허를 받은"이라고 말하며, 자신이 만든 거미줄에 모두가 걸려들었음을 인정한다. 무한에 반대되는 개념으로서 거미줄은 인간이 만든 미로를 상징하며, 그 안에서 우리 모두는 출구를 찾기 위해 몸부림친다.

벨라 타르의 영화 각색

1994년 헝가리의 거장 감독 벨라 타르는 사탄탱고를 7시간 반짜리 흑백 영화로 각색했다. 이 영화는 영화사에 길이 남을 걸작으로 평가받으며, 수잔 손택은 "7시간 동안 매 순간 파괴적이고 매혹적이다. 남은 생애 동안 매년 이 영화를 보고 싶다"고 극찬했다.​​

타르의 영화는 소설의 구조를 충실히 따르며, 단 150개의 샷으로 구성되었고 많은 장면이 10분 이상의 롱테이크로 촬영되었다. 영화는 소의 무리가 황폐한 농장을 떠도는 10분짜리 오프닝 샷으로 시작하며, 이는 이야기의 결말을 상징적으로 암시한다.

타르는 크러스너호르커이와 긴밀히 협력했으며, 크러스너호르커이는 1988년 저주 이후 타르에게 이야기를 제공해왔다. 타르는 1985년부터 이 영화를 만들고 싶어 했지만, 헝가리의 엄격한 정치 환경 때문에 제작을 진행할 수 없었다. 영화는 2012년 영국영화협회의 사이트 앤 사운드 비평가 투표에서 50대 영화에 선정되었다.​​

문학사적 의의와 영향

사탄탱고는 현대 헝가리 문학을 대표하는 작품이자, 세계 문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크러스너호르커이는 고골, 멜빌과 같은 대문호와 비교되며, 카프카에서 토마스 베른하르트로 이어지는 중유럽 문학 전통 속의 위대한 서사 작가로 평가받는다.

 

스웨덴 한림원은 2025년 노벨문학상 수상 이유로 "강렬하고 비전적인 작품세계는 종말론적 공포의 한가운데서도 예술의 힘을 재확인시켰다"고 밝혔다. 한림원은 또한 "부조리와 기괴한 과잉 표현이 특징"이지만 "동양에서 영감을 받아 더욱 사색적이고 섬세하게 다듬어진 문체를 구사한다"고 덧붙였다.

 

작품은 1985년 헝가리에서 출간 당시 센세이션을 일으켰으며, 그때까지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작가의 명성을 확립했다. 2012년 조지 시르테스의 영어 번역 출간 이후 영어권에서도 큰 주목을 받았으며, 2013년 베스트 번역 도서상과 인디펜던트 해외소설상 후보에 올랐다.

현대적 의미와 보편성

사탄탱고가 출간된 지 40년이 지났지만, 작품의 주제는 여전히 현재성을 갖는다. 거짓 예언자, 대중의 조작, 희망의 배신, 체제의 붕괴 등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문제들이다. 문학평론가 폴 텐가르트는 크러스너호르커이가 역사적 문제를 다룬 이전 노벨상 수상자들과 달리, 지금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트라우마, 즉 전 세계로 확산되는 파시즘을 묘사한다고 지적한다.

 

작가 자신도 노벨상 수상 직후 인터뷰에서 "상상력을 사용하고 책을 읽고 즐기라. 독서가 우리에게 지구상의 이 매우 어려운 시기를 생존할 수 있는 더 많은 힘을 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는 사탄탱고가 단순히 과거의 특정 시기를 다룬 작품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보편적 조건에 대한 통찰을 담고 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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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절망 속의 예술

사탄탱고는 읽기 쉬운 작품이 아니다. 긴 문장, 단락 구분의 부재, 비선형적 서사, 어두운 주제 등은 독자에게 인내와 집중을 요구한다. 그러나 이 작품을 끝까지 읽은 독자들은 현대 문학의 진정한 걸작을 경험하게 된다.

 

작품은 인간의 나약함, 배신의 용이함, 희망의 허약함을 가차 없이 드러낸다. 동시에 그러한 절망적 상황 속에서도 예술이 창조될 수 있으며, 그 예술 자체가 의미를 가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의사가 마지막에 사탄탱고를 쓰기 시작하는 장면은 이러한 메타픽션적 성찰의 정점이다.

 

크러스너호르커이는 "사탄탱고를 쓴 후에도 글쓰기를 개선하기 위해 또 다른 작품을 쓰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는 예술가로서의 끊임없는 탐구 정신을 보여준다. 사탄탱고는 완벽한 작품이 아닐지 몰라도, 예술이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이 작품을 읽는 것은 마치 7시간짜리 영화를 보는 것과 같은 경험이다. 느리고, 도전적이며, 때로는 고통스럽기까지 하다. 그러나 끝까지 함께한 독자는 변화한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사탄탱고는 단순히 읽히는 책이 아니라, 경험되고 체득되는 책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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