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뽀빠이' 이상용 별세: 국민 MC의 50년 방송 인생을 돌아보다

꿀깨비 2025. 5. 9.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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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빠이' 이상용 별세: 국민 MC의 50년 방송 인생을 돌아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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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빠이' 이상용 별세: 국민 MC의 50년 방송 인생을 돌아보다

'뽀빠이 아저씨'로 전 국민의 사랑을 받았던 방송인 이상용이 2025년 5월 9일 향년 81세로 별세했습니다.

 

이상용은 이날 오전 감기 증세로 서울 서초구 자택 인근 병원을 다녀오던 중 갑자기 쓰러져 서울성모병원으로 긴급 이송되었으나 끝내 숨을 거뒀습니다. 

 

그의 갑작스러운 별세 소식에 방송계와 팬들의 애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어린이부터 군인, 노년층까지 세대를 아우르며 사랑받았던 이상용의 파란만장한 인생과 '뽀빠이'라는 별명을 얻게 된 계기, 그리고 반세기에 가까운 방송 인생을 돌아보겠습니다.

역경 속에서 피어난 강인한 인생

이상용은 1944년 4월 2일 일제강점기 말기 충청남도 서천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어린 시절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가난한 집안 환경으로 인해 미숙아로 태어난 이상용은 살 가망이 없다는 판단 하에 생매장되었다가 12살이었던 이모에 의해 구출되어 깊은 산속에서 자랐다고 합니다. 미숙아로 태어난 그는 6살이 되어서야 걸음마를 시작할 수 있었고, 12살까지 8가지 성인병을 앓을 정도로 병약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역경을 이겨내기 위해 10대 초반부터 보디빌딩을 시작했고, 고등학교 시절에는 보디빌더로 활약했으며 고려대학교 재학 시절에는 '미스터 고려'에 선발될 정도로 건강을 회복했습니다. 대전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임학과를 졸업한 그는 ROTC 5기로 임관하여 장교로 군 복무를 했으며, 1968년부터 1969년까지 베트남 전쟁에도 참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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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빠이' 별명의 탄생과 방송계 입문

대한민국 육군 중위로 예편 후, 이상용은 1971년 CBS 기독교방송에서 MC로 방송계에 발을 들였습니다. 그의 방송 데뷔 계기는 이상용 자신의 말에 따르면 이색적이었습니다. TV조선의 '광화문의 아침'에 출연해 밝힌 바에 따르면, 그는 군 제대 후 "웃기는 자질이 있다"는 주변의 평가에 힘입어 방송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웃기는 자질이 있는데 뭐 채비 한번 보니까 별 거 아냐... 그래서 방송국의 앞에 빗자루 갖다놓고... 그때 인기가 유쾌한 청백전... 시청률 90%... 그 피디가 배정 등 학교 선배요... 그래서 유쾌한 청백전을 하고 얘기 한번 해라 그래서..." 라고 이야기했습니다.

 

1973년 MBC '유쾌한 청백전'에서 보조 MC를 맡으며 본격적으로 TV에 모습을 드러낸 이상용은 이후 1975년 8월부터 9년 동안 KBS의 어린이 노래 프로그램인 '모이자 노래하자'의 MC를 맡게 됩니다. 이 프로그램에서 그는 '뽀빠이'라는 별명을 얻게 됩니다. 이 별명은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어 평생 그를 따라다니며 대중에게 친근한 이미지로 각인되었습니다.

'모이자 노래하자'의 혁신적인 시도

'모이자 노래하자'는 1973년 국내 최초로 어린이 프로그램을 어른들의 쇼프로그램처럼 제작한 혁신적인 시도였습니다. 당시 보수적인 동요 관계자들은 어린이 정서 발달에 유익하지 않다며 반대했지만, 어린이들과 학부모들의 좋은 반응으로 인해 동요에도 록 리듬 등 대중음악 성향의 반주가 가미되는 변화의 출발점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리듬색션이 포함된 24인조의 팝오케스트라를 편성하여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시도를 했으며, 초기에는 가수 김상희가 MC를 맡았다가 이후 이상용이 진행을 맡게 되었습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현재 스타가 된 많은 어린이 출연자들을 발굴했는데, 故 강수연, 장서희, 윤유선, 하희라 등이 이 프로그램 출신입니다. 

 

특히 이상용은 장서희를 두고 "뭔가 될 것 같았다"며 "카메라 맨한테 내가 키워보겠다고 했는데 그래서 그런지 장서희는 아직도 뽀빠이 아저씨 덕분에 했다고 이야기 한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국민 MC로 자리매김한 '우정의 무대'

이상용의 가장 대표적인 활동은 1989년부터 1997년까지 방영된 MBC '우정의 무대'입니다. 군대 위문 프로그램이었던 '우정의 무대'를 통해 이상용은 전국 병영을 누비며 병사들과 소통하고 위로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당시 군 복무 중인 젊은이들에게 큰 위안이 되었고, 이상용은 '병사들의 큰 형님' 역할을 하며 국민적인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상용은 70년대엔 어린이들의 친구, 80~90년대엔 군인들의 큰 형님 역할을 하며 방송계의 전성기를 누렸고, 최근에는 노인, 실버 대상 행사와 방송에 출연하며 노년층과도 소통했습니다. 이처럼 그는 다양한 세대를 아우르며 50여 년간 방송인으로서 활발히 활동했습니다.

다양한 방송 활동과 인생 후반기

2000년대 들어서도 이상용의 방송 활동은 계속되었습니다. 2003년부터 2016년까지 방영된 MBC TV의 교양 프로그램 '늘 푸른 인생'에 출연했으며, MBN의 '뽀빠이 팔도유람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시청자들과 만났습니다. TV조선의 '속설검증쇼 속사정'에도 출연하는 등 토크쇼와 교양 프로그램에서도 활약했습니다.

 

최근에는 tvN STORY '회장님네 사람들'에 출연해 건강 비결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그는 "일평생 술, 담배, 커피를 하지 않았다"며 "그리고 바로 운동이다"라고 건강의 비결을 전했습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운동을 시작해 평생 건강 관리에 힘썼다는 이상용은 최근까지도 활발한 활동을 이어왔습니다.

 

또한 송해의 후임으로 '전국노래자랑' MC 자리가 유력했다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이상용은 "(故 송해가) 내가 아직 안 죽어서... 네가 해야지라고 했다"며 "그래서 기대했지만 깜깜무소식이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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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러운 별세와 애도

이상용의 별세 소식은 방송계와 팬들에게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이상용 측 관계자는 "어제 강연이 끝나고 내일 병원에 다녀오신다고 했었다. 오늘 병원에 다녀오시다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셨다"며 "평소 지병은 없으셨다"고 전했습니다.

 

이상용의 빈소는 아직 마련되지 않았으며, 현재 비어있는 빈소가 없어 10일(내일) 오후께 서울 성모병원 장례식장에 빈소를 마련할 예정입니다. 가족 중 아들이 해외에 거주하고 있어 귀국 후 빈소를 마련한다고 합니다.

국민에게 남긴 웃음과 추억

이상용은 반세기 가까이 방송계에서 활동하며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모든 세대에게 웃음과 즐거움을 선사했습니다. '뽀빠이'라는 친근한 별명으로 불리며 대한민국 방송 역사의 한 획을 그은 그는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따뜻한 추억으로 남을 것입니다. 특히 '모이자 노래하자'와 '우정의 무대'는 각 세대의 향수를 자극하는 프로그램으로, 이상용의 이름과 함께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어려운 시절에도 밝은 웃음을 잃지 않았던 이상용의 모습은 많은 이에게 위로와 희망이 되었습니다. 그의 별세는 한국 방송계의 큰 별이 졌음을 의미하며, 그가 남긴 방송 유산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기억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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