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지하철 5호선 방화사건 종합분석: 대구 참사 이후 22년, 우리는 얼마나 안전해졌나
2025년 5월 31일 오전, 서울 지하철 5호선에서 발생한 방화사건은 한국 지하철 안전시스템의 현주소를 다시 한번 점검하게 만드는 중대한 사건이다.
다행히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와 같은 대형 인명피해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400여 명의 승객이 터널로 대피하는 아찔한 상황이 벌어졌다. 이번 사건을 통해 우리는 과거의 교훈이 얼마나 잘 반영되었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떤 추가적인 안전대책이 필요한지 종합적으로 분석해본다.
사건 개요 및 시간대별 전개과정
사건 발생 현황
2025년 5월 31일 오전 8시 43분, 서울 지하철 5호선 여의나루역에서 마포역으로 향하던 열차에서 60대 남성이 기름통을 이용해 방화를 저질렀다. 이 사건으로 400여 명의 승객이 터널을 통해 긴급 대피했으며, 21명이 연기 흡입과 발목 골절 등으로 병원에 이송되었다.

목격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용의자는 미리 준비한 기름통을 들고 지하철에 탑승한 후 라이터형 토치를 사용해 옷가지 등에 불을 지른 것으로 파악되었다. 놀란 승객들은 "불이야"를 외치며 열차에서 빠져나갔고, 어두운 터널 속에서 질서 있게 대피 행렬을 이어갔다.

신속한 초기 대응과 진압
이번 사건에서 주목할 점은 초기 대응의 신속함이다. 기관사와 일부 승객들이 객차에 비치된 소화기를 사용해 즉시 진화 작업에 나섰고, 이로 인해 화재가 크게 번지지 않았다. 소방당국은 166명의 소방관과 68대의 장비를 동원해 오전 10시 24분 화재를 완전히 진압했다.
경찰은 사건 발생 1시간 후인 오전 9시 45분 여의나루역에서 60대 남성 용의자를 현행범으로 체포했다. 흥미롭게도 용의자는 대피하는 승객들과 함께 들것에 실려 나왔지만, 손에 묻은 그을음을 수상하게 여긴 경찰의 추궁으로 범행을 자백했다.
방화 동기 및 용의자 심리 분석
방화범의 심리적 특성
방화 사건의 배후에는 복잡한 심리적 요인이 작용한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방화는 단순한 파괴 행위를 넘어서 열등감과 좌절감이 쌓인 개인이 불을 통해 자신의 힘을 표출하려는 심리적 기제로 분석된다.
경희대동서신의학병원 화병클리닉 연구에 따르면, 방화범들은 종종 소외감이 심해질 경우 자신을 위로하기 위한 강박적 방법으로 방화를 선택한다. 불은 따뜻한 이미지로 긴장을 완화해주고 안정감을 주기 때문이다.
2003년 대구 참사와의 비교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의 가해자 김대한의 경우, 뇌졸중 후유증으로 인한 우울증과 경제적 어려움, 사회적 고립이 방화 동기로 작용했다. 피의자는 뇌졸중으로 인한 정서장애와 분노 통제 불능 증상이 일반 사회에 대한 적개심으로 확장되면서 극단적인 범행을 저질렀다.
이번 서울 지하철 사건의 용의자 역시 60대 남성으로, 유사한 연령대와 사회적 배경을 가지고 있어 전문가들은 심층적인 동기 분석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과거 지하철 대형사고 사례 분석
2003년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 한국 최악의 지하철 사고
2003년 2월 18일 오전 9시 55분경 발생한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는 한국 철도 역사상 가장 참혹한 사고로 기록되어 있다. 사망자 192명, 부상자 148명이라는 엄청난 인명피해를 낳았으며, 이는 세계적으로도 1995년 바쿠 지하철 화재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지하철 참사였다.

사고의 직접적 원인은 김대한(당시 56세)의 방화였지만, 피해가 확산된 근본적 이유는 당시 지하철 시스템의 치명적 결함들이었다.
첫째, 반대편에서 오던 1080호 열차가 화재 상황을 모른 채 역으로 진입하면서 화재가 더욱 확산되었다.
둘째, 1080호 열차 기관사가 마스콘키를 뽑고 대피하면서 출입문이 닫혀 승객들이 탈출할 수 없게 되었다.
지하철 화재의 구조적 문제점
대구 참사 당시 지하철의 가장 치명적인 문제는 내장재였다. 객차 내부가 모두 가연성 재질로 되어 있어 화재가 급속도로 번졌으며, 특히 폴리우레탄 폼 시트, FRP 내장재, 폴리염화비닐 바닥재 등이 유독가스를 발생시켜 승객들의 질식사를 야기했다.

또한 당시에는 승강장안전문(PSD)이 설치되어 있지 않았고, CCTV 감시시스템도 미비했으며, 비상대응 체계도 제대로 구축되어 있지 않았다. 지하철 화재 진압 기술 부족과 방독면, 산소통 등 장비 부족으로 구조대가 사고 발생 후 3시간이 넘도록 현장에 진입하지 못했다.
부산 지하철 화재사고 (2014년)
2014년 7월 17일 부산 지하철 1호선에서 발생한 화재사고는 대구 참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미했지만 중요한 교훈을 제공했다. 이 사고는 과전류로 인한 추진장치 파손이 원인이었으며, 9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부산 사고에서 주목할 점은 장비 노후화 문제였다. 부산지하철노조는 노후 전동차의 수명 연장을 위한 리모델링 과정에서 회로차단기 불량이 사고 원인이 되었다고 주장했다. 이는 지하철 안전관리에서 예방정비의 중요성을 부각시켰다.
현재 지하철 안전시설 현황
대구 참사 이후 안전시설 혁신
2003년 대구 참사 이후 한국의 지하철 안전시설은 획기적으로 개선되었다. 가장 대표적인 변화는 승강장안전문(PSD) 설치로, 현재 서울지하철 전 역에 설치되어 있어 승객의 선로 추락사고와 지하철 밀치기 등을 원천 차단하고 있다.

내장재 교체도 전면적으로 이루어졌다. 2003년 연말부터 2006년까지 전국 지하철 전동차 4,325량에 대한 내장재 교체가 완료되었으며, 총 3,434억원이 투입되었다. 교체된 내장재는 선진국 수준의 화재 시험을 거친 불연성 또는 극난연성 재료로, 산소지수, 화염전파, 연기밀도, 독성 시험 등의 엄격한 기준을 만족한다.

첨단 기술 도입 현황
현재 서울지하철은 스마트스테이션 시스템을 통해 첨단 안전관리를 구현하고 있다. 3D맵, IoT센서, 지능형 CCTV 등을 활용해 승강장안전문, 소방, 승강기, CCTV, 방범 셔터 등을 통합 관리하며, 실시간 위험 상황 감지가 가능하다.

200만 화소 이상의 지능형 CCTV는 AI 딥러닝 기반으로 위험지역 침입, 에스컬레이터 쓰러짐 등을 자동 인식해 돌발 상황을 즉각 알려준다. 스마트스테이션 구축 결과, 돌발 상황 대응 시간이 72.7%(11분→3분), 역사 순찰 시간이 64.3%(28분→10분) 단축되는 효과를 보였다.

보안 인력 및 비상대응 체계
현재 서울지하철에는 271명의 지하철보안관이 2인 1조로 활동하며 이상행동 단속, 현행범 경찰 인도, 비상 상황 초동 조치 등을 수행하고 있다. 또한 6,539대의 비상통화장치와 595대의 112직통비상벨이 설치되어 있어 긴급상황 시 즉시 대응이 가능하다.

비상대피 시설도 대폭 강화되었다. 지하철 역사와 터널에는 대피유도등이 설치되어 있고, 각 객차마다 비상용 망치와 소화기가 비치되어 있다. 승객들이 수동으로 문을 열 수 있는 비상코크도 모든 차량에 설치되어 있다.

재발방지 핵심 대책
실시간 모니터링 시스템 강화
이번 서울 지하철 방화사건을 계기로 서울시는 전방위적인 안전대책 가동을 지시했다. 특히 실시간 모니터링 강화가 최우선 과제로 부상했으며, CCTV 모니터링 확대와 지능형 감시시스템 도입이 가속화될 예정이다.

보안검색대 설치 확대 필요성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에서 용의자가 기름통을 쉽게 반입할 수 있었던 점을 지적하며, 공항 수준의 보안검색대 설치 확대가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현재 일부 주요 역사에만 설치된 보안검색대를 지하철 전 역으로 확대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지하철보안관 권한 강화
현재 지하철보안관들은 특별사법경찰권이 없어 위험물 압수나 체포에 한계가 있다. 시민 안전을 더욱 적극적으로 보호하기 위해 지하철보안관에게 특별사법경찰권을 부여하는 법 개정이 지속적으로 요청되고 있다.
화재진압장비 및 대피시스템 개선
이번 사건에서 기관사와 승객들이 소화기로 초기 진화에 성공한 것은 다행이지만, 더욱 효과적인 화재진압장비 도입이 필요하다. 특히 지하 터널 환경에 특화된 연기 배출 시스템과 자동 화재진압 시스템 도입이 검토되고 있다.

승객 교육 및 인식 개선
지하철 화재 시 승객들의 올바른 대응이 인명피해를 최소화하는 핵심 요소다. 정기적인 비상대피 훈련과 승객 대상 안전교육을 강화하고, 지하철 앱을 통한 실시간 안전 정보 제공 시스템도 개선이 필요하다.
안전수준 변화 분석
대구 지하철 참사 이전과 현재의 안전수준을 비교해보면 전반적으로 혁신적인 개선이 이루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승강장안전문의 경우 2003년 이전에는 전무했지만 현재 95점 수준까지 향상되었고, 내장재 안전성도 20점에서 95점으로 대폭 개선되었다.


CCTV 감시시스템은 30점에서 85점으로, 화재진압장비는 40점에서 90점으로 상승했다. 그러나 보안인력 분야는 여전히 75점 수준에 머물러 있어 추가적인 개선이 필요한 상황이다.
결론 및 향후 과제
이번 서울 지하철 5호선 방화사건은 2003년 대구 참사 이후 22년간 축적된 안전시스템의 효과를 입증하는 사건이었다. 400여 명의 승객이 질서 있게 대피하고, 신속한 초기 진화로 대형 참사를 막을 수 있었던 것은 그동안의 안전투자와 시스템 개선의 결과다.
하지만 방화라는 의도적 범죄행위 자체를 원천 차단하기 위해서는 보안검색 강화, 실시간 모니터링 시스템 고도화, 지하철보안관 권한 확대 등 추가적인 대책이 시급하다. 특히 고령화 사회에서 소외감과 우울감을 겪는 개인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정신건강 지원 체계 구축도 근본적인 예방책이 될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안전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투자다. 교통사고 사망자가 11년 연속 감소하는 성과를 보이고 있듯이, 지하철 안전 분야도 꾸준한 개선 노력을 통해 시민들이 안심하고 이용할 수 있는 대중교통 시스템으로 발전해 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