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 30년의 시간을 뛰어넘은 양귀자의 페미니즘 서사
작품 개요 및 배경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은 1992년 발간된 양귀자의 장편소설로, 출간 당시 한국 사회에 강력한 페미니즘 논쟁을 불러일으킨 작품입니다. 대한민국 페미니즘 문학의 새로운 가능성을 개척했다고 평가받는 이 소설은 발간 즉시 베스트셀러에 올랐으며, 영화와 연극으로까지 제작되어 대중적 관심을 끌었습니다.
발표 당시 많은 문학평론가들은 이 작품을 통속적이고 반페미니즘적 텍스트로 평가하기도 했지만, 최근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20~30대 여성 독자들에 의해 페미니즘 텍스트로 적극 재해석되는 '양귀자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특히 SNS를 중심으로 이 작품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평가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줄거리 및 주요 내용
소설의 주인공 강민주는 27세의 심리학자이자 여성운동활동가입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모습을 목격했고, 자신도 아버지로부터 학대를 경험한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학원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후 여성문제상담소의 연구원으로 일하며, 여러 형태의 여성폭력 사례를 접하게 됩니다.
여성문제상담소에서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는 여성, 결혼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해 고민하는 여성들의 사연을 듣게 된 강민주는 남성들에 대한 분노를 느끼게 되고 '상징적인 복수'를 계획합니다. 그녀는 스스로를 신의 대리인이라 여기며 불합리한 현실을 신의 뜻에 맞게 재구조화하려 합니다.
강민주는 자신의 심복 황남기와 함께 당대 최고의 인기 영화배우이자 모든 여성들의 우상인 백승하를 납치하여 자신의 아파트에 감금합니다. 이를 통해 여성들에게 심어진 환상을 깨고 사회에 경종을 울리고자 했습니다.
소설은 "삶이란 신이 인간에게 내린 절망의 텍스트다. 그러나 나는 이 텍스트 자체를 거부한다"라는 강민주의 선언으로 시작합니다. 이 선언은 운명과 사회적 규범에 순응하길 거부하는 그녀의 급진적 태도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주제와 의의
이 소설은 가부장제 사회에 대한 비판과 여성의 억압, 그리고 이에 대한 저항을 핵심 주제로 다룹니다. "희생이라니, 고통의 인내는 미덕이 아니다. 그것이 미덕이라는 주장은 기득권을 쥔 자들의 염치없는 요구일 뿐이다"라는 구절은 여성의 희생을 당연시하는 사회적 관념에 정면으로 도전합니다.
제목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에서 '금지된 것'의 의미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이 가능합니다. 일부 독자들은 이를 남녀가 동등한 사회나 여성의 권력으로 해석하는 반면, 다른 이들은 '사랑'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이는 작품의 다층적 의미를 보여주는 부분입니다.
정신분석학적 관점에서 이 소설을 분석한 연구들도 있는데, 이를 통해 강민주라는 인물의 복잡한 내면세계와 행동 동기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단순히 가부장제 전복에 실패한 페미니즘 서사가 아닌, 인간의 의식과 무의식 사이의 다양한 양상을 탐구하는 텍스트로서의 가치를 지닙니다.
양귀자 작가 소개
양귀자는 1955년 7월 17일 전라북도 전주에서 태어났습니다. 전주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원광대학교 국문학과에 입학했으며, 국어국문학과 문예장학생으로 선발될 정도로 일찍부터 글쓰기에 재능을 보였습니다. 1978년 원광대를 졸업하고 그해 《문학사상》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했습니다.
주요 작품으로는 《원미동 사람들》, 《희망》, 《지구를 색칠하는 페인트공》, 《슬픔도 힘이 된다》 등이 있습니다. 이해하기 쉬우면서도 유행을 선도하는 새로운 주제를 다루는 그의 작품들은 대중의 큰 호응을 얻어 1990년대 대표적인 베스트셀러 작가로 자리매김했습니다.
1999년부터는 홍지서림의 대표를 맡고 있으며, 문학사상 신인상, 이상문학상, 현대문학상, 21세기문학상 등 다수의 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독자 반응 및 감상평
많은 독자들이 1992년에 출간된 이 소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파격적이고 급진적이라는 반응을 보입니다. 가부장제 체제가 현재보다 훨씬 굳건하던 시대에 이처럼 전형적이지 않은 여성 캐릭터를 내세운 소설을 쓴 작가의 용기에 감탄하는 목소리가 많습니다.
한 독자는 "깊은 카타르시스와, 동시에 서러움을 느꼈다. 무려 30년 전에 등장한 강민주의 세상과 내가 지금 살아가는 세상이 별반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안타까움을 표현했습니다. 이는 소설에서 다루는 여성 인권 문제가 3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결말에 대해서는 다소 상반된 의견이 존재합니다. 일부 독자들은 "결말을 읽고서는 허무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며 당혹감을 표현하기도 합니다. 전반부에 보였던 강민주의 태도와 후반부의 변화 사이의 괴리가 이러한 반응을 불러일으킨 것으로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페미니즘 입문서"로 불리며, 많은 독자들에게 페미니즘 사상을 접하는 계기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특히 현대의 젊은 여성 독자들은 이 작품을 통해 여성 해방과 자아 실현에 대한 깊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결론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은 출간된 지 30년이 넘었음에도 여전히 강력한 메시지와 문학적 가치를 지닌 작품입니다. 페미니즘적 관점에서든 인간 내면의 탐구라는 측면에서든,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다층적 텍스트로서 한국 문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다시 조명받는 '양귀자 현상'은 이 작품이 시대를 초월한 문학적 생명력을 지니고 있음을 증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