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리뷰

구병모의 『파과』: 60대 여성 킬러의 노화와 인간성에 대한 탁월한 성찰

꿀깨비 2025. 5. 9.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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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병모의 『파과』: 60대 여성 킬러의 노화와 인간성에 대한 탁월한 성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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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과』는 한국 문학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독특한 캐릭터와 서사를 통해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구병모 작가의 대표작입니다.

 

이 작품은 60대 여성 킬러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노화, 인간성, 존재의 의미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아내고 있으며, 최근에는 영화로도 제작되어 더 많은 대중에게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작품 개요: 노화하는 킬러의 내면 여정

『파과』는 40여 년간 청부 살인을 업으로 삼아온 60대 여성 킬러 '조각(爪角)'의 이야기입니다. 한때 '손톱'으로 불리던 그녀는 날카롭고 빈틈없는 살인 기술로 방역 작업(청부 살인의 은어)을 처리해왔습니다. 

 

그러나 몸과 기억이 예전 같지 않게 삐걱거리면서 이제는 퇴물 취급을 받게 됩니다. 평생 "지켜야 할 건 만들지 말자"고 되뇌며 감정과 관계에서 자신을 철저히 차단해온 조각은 노화와 쇠잔의 과정 속에서 점차 내면의 변화를 경험하게 됩니다.

 

노화가 진행되면서 조각은 버려진 늙은 개를 데려다 키우고, 청부 살인 의뢰인의 눈에서 슬픔과 공허를 발견하며, 폐지를 모으는 노인들에게 도움을 주는 등 이전과는 다른 모습을 보입니다. 이러한 변화는 조각에게 혼란을 가져오지만, 동시에 그녀가 평생 억눌러온 인간적인 감정과 연민을 일깨웁니다.

주요 인물 분석

조각(爪角) - 노화와 인간성 사이의 균열

 

작품의 주인공 조각은 열다섯 살에 '류'를 만나 킬러의 길에 들어선 후, 45년간 청부살인을 해온 노련한 방역 업자입니다. '조각'이라는 이름은 짐승의 발톱과 뿔이라는 뜻으로, 자신을 적으로부터 보호해주는 물건을 의미합니다. 그녀는 지하철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외모의 노부인으로 위장하며 살아갑니다.

 

조각의 캐릭터는 전통적인 여성상과 노인상을 뒤집는 파격적인 설정으로, 그녀의 내면 변화는 작품의 핵심 축을 이룹니다. 평생 감정을 억제해온 그녀가 노화와 함께 점차 인간적 감정을 되찾아가는 과정은 인간 존재의 근본적 질문들을 던집니다.

투우 - 적이자 거울

투우는 조각과 대립하는 미스터리한 킬러로, 조각의 일을 방해하며 그녀를 벼랑 끝으로 내몹니다. 그는 사실 조각이 예전에 죽인 의뢰인의 아들로, 그녀가 자신의 아버지는 죽였지만 자신은 왜 살려두었는지, 그리고 자신을 기억하는지 묻고자 합니다.

 

투우는 조각에 대한 복잡한 감정을 품고 있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 조각에게 약을 먹여 보살핌을 받았던 기억을 간직하고 있으며, 조각의 삶에 대한 애증과 공허함, 이해받지 못한 분노가 뒤섞인 감정을 보여줍니다. 투우는 조각에게 특별한 존재가 되고 싶은 욕망으로 방역업까지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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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의 주제와 메타포

노화와 쇠락의 메타포

 

작품 제목 '파과(破果)'는 상한 과일을 의미하며, 노화와 쇠락의 강력한 메타포로 작용합니다. 특히 조각의 냉장고에서 물러터진 채 발견되는 복숭아는 조각 자신의 상황을 상징합니다. "달콤하고 상쾌하며 부드러운 시절을 잊은 그 갈색 덩어리"를 바라보며 조각은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눈물을 흘립니다.

 

구병모 작가는 작품 속에서 다양한 메타포를 통해 노인, 여성, 킬러의 삶을 풍부하게 표현합니다. 조각과 동일시되는 메타포로는 그녀의 예명인 '조각'과 '손톱', 그녀의 개 '무용', 폐지를 줍는 노인, 그리고 상한 복숭아 등이 있습니다.

연민과 인간 연결의 발견

조각이 처음으로 연민을 느끼는 대상은 죽은 딸의 복수를 위해 의뢰를 맡긴 '복부인'입니다. 평생 감정을 억제해온 조각은 복부인의 눈에서 공허를 발견하고 여성으로서 여성에 대한 연민을 느낍니다. 그녀는 이러한 변화를 "노화와 쇠잔의 표지가 아니고서야 이런 일관성 없음이라니"라고 평가하며 자신이 변화하고 있음을 인식합니다.

 

또한 조각은 자신의 정체를 알게 된 강 박사로부터 처음으로 연민을 받으며, 그의 가족을 "진정으로 사랑스럽다"고 느끼고 "단 한순간이라도 그 장면에 속한 인간이 된 듯한 감각을 누리"고 싶어합니다. 이러한 변화는 조각이 인간적 연결과 보편성을 갈망하게 되었음을 보여줍니다.

구병모의 문학적 기법과 특징

구병모 작가는 『파과』에서 치밀한 묘사와 긴 호흡의 문장을 통해 실제와 허구의 간극을 매우 좁혀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도록 만듭니다. 킬러라는 다소 비현실적인 설정을 일상의 디테일과 섬세한 심리 묘사로 현실감 있게 표현하는 능력이 돋보입니다.

 

특히 끊일 듯 끊이지 않는 문장으로 눈앞에서 상황이 펼쳐지는 듯한 이미지를 그려내는 효과가 있으며, 이는 독자들에게 깊은 몰입감을 선사합니다. 또한 노인, 여성, 킬러라는 세 가지 정체성의 교차점에서 특수한 인물이 보편적 감정과 연민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려내는 구성은 매우 독창적입니다.

저자 소개: 구병모

구병모는 1976년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습니다. 본명은 정유경이며, 구병모는 필명입니다. 2008년 장편소설 『위저드 베이커리』로 창비청소년문학상을 수상하며 작가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리얼리즘 소설, SF, 판타지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발표하며 장르의 경계를 넘나드는 독창적인 문학 세계를 구축해왔습니다. 주요 작품으로는 『위저드 베이커리』, 『아가미』, 『파과』, 『한 스푼의 시간』, 『버드 스트라이크』 등이 있으며, 2015년에는 소설집 『그것이 나만은 아니기를』로 오늘의작가상과 황순원신진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2024년에는 시인 서대경과 함께 제10회 김현문학패 수상자로 선정되어 1500만원의 창작지원금을 받기도 했습니다. 구병모는 "끊임없이 새롭고 싶다"는 창작 철학을 바탕으로, 기존 작품의 프레임에 갇히지 않고 계속해서 다양한 시도를 이어가는 작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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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영화화와 현대적 의의

『파과』는 2025년 5월 1일 영화로 개봉되었으며, 민규동 감독이 연출하고 이혜영(조각 역)과 김성철(투우 역)이 주연을 맡았습니다. 이 영화는 2025년 2월 베를린영화제에서 최초 공개되었으며, 원작 소설가인 구병모는 영화에 대해 "강렬한 액션과 서정적인 감정의 조화로 독보적인 분위기를 완성시킨 액션 드라마"라고 평가했습니다.

 

『파과』는 한국 문학에서 새로운 여성 서사를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60대 여성 킬러라는 전례 없는 캐릭터를 통해 노인과 여성에 대한 사회적 시선과 편견을 돌아보게 하며, 우리 사회에서 노인이 겪는 소외와 단절의 문제를 독특한 방식으로 조명합니다.

 

이 작품은 특히 노화와 함께 찾아오는 변화, 그리고 인간이 결국 추구하는 연결과 소속감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고 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킬러의 이야기지만, 실제로는 모든 인간이 마주하는 근본적인 질문들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보편적인 공감을 얻고 있습니다.

결론

구병모의 『파과』는 60대 여성 킬러라는 독특한 캐릭터를 통해 노화, 인간성, 연민, 그리고 존재의 의미를 탐구하는 작품입니다. 화려한 액션 속에 담긴 깊은 철학적 질문과 정교한 메타포, 그리고 세밀한 심리 묘사는 이 소설을 한국 문학의 주목할 만한 작품으로 만들었습니다.

 

최근 영화화되면서 더 많은 독자들에게 알려진 『파과』는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과 여운을 남길 것입니다. 구병모 작가가 창조한 '조각'의 이야기는 우리 모두가 언젠가 마주하게 될 노화와 인생의 본질적 질문들에 대한 의미 있는 성찰을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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