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인간 폭력의 기원』 - 영장류학의 관점에서 바라본 인간 폭력의 실체

꿀깨비 2025. 3. 26.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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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종종 끔찍한 폭력을 저지른 사람을 '짐승'에 비유합니다. 그러나 이 비유가 과학적으로 타당할까요? 일본의 저명한 영장류학자 야마기와 주이치 교수는 『인간 폭력의 기원』에서 이 질문에 명쾌한 답을 제시합니다. 놀랍게도 인간의 폭력성은 동물적 본성이 아닌 문명의 산물이라는 것입니다.

저자 소개: 야마기와 주이치 교수

야마기와 주이치는 1952년 도쿄에서 태어나 교토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교토대학교 이학연구과 교수로 재직하며, 일본영장류학회와 국제영장류학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2014년에는 교토대학교 총장에 취임했습니다. 영장류사회생태학과 인류진화론을 전공으로 40년 가까이 야생 고릴라를 비롯한 다양한 영장류의 행동을 관찰하며 인간사회와의 비교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책의 개요

2018년 7월 곰출판에서 출간된 『인간 폭력의 기원』은 20세기 역사 속 대량학살과 계속되는 분쟁의 원인을 탐구합니다. 인류학적 관점에서 인간 폭력의 기원을 추적하며, 고릴라나 침팬지 같은 우리와 유전적으로 매우 가까운(1~3% 차이) 유인원들과 인간의 폭력성을 비교분석합니다.

저자는, 인간의 폭력성이 동물적 본성이 아닌 문명화 과정에서 발전한 특성이라는 충격적인 주장을 펼칩니다. 이는 흔히 믿어온 '수렵가설'—인간이 수렵을 위해 개발한 무기와 기술이 자연스럽게 전쟁으로 이어졌다는 이론—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것입니다.

주요 내용 분석

공격성에 관한 오해 바로잡기

책은 먼저 인간 폭력의 본질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습니다. 우리는 흔히 인륜을 저버린 폭력적 행위를 '짐승 같다'고 표현하지만, 저자는 이것이 근본적으로 잘못된 인식임을 지적합니다. 인간과 유사한 영장류들은 사냥과 공격에 완전히 다른 행동 패턴을 보이며, 특히 고릴라는 영화에서 흔히 묘사되는 것과 달리 초식성이며 매우 온순한 동물입니다.

인류 폭력의 진화적 기원

야마기와 교수는 인류 진화의 역사를 면밀히 살펴보며 폭력의 기원을 추적합니다. 인류가 수렵 도구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700만 년의 진화 역사 중 고작 40~50만 년 전부터이며, 이를 인간에게 사용한 것은 약 1만 년 전부터라고 밝힙니다. 무기를 사용한 전쟁의 증거도 농경이 시작된 약 1만 년 전 이후에야 발견됩니다.

폭력을 증폭시킨 세 가지 요인

저자는 인간의 폭력성을 강화한 구체적 요인으로 다음 세 가지를 제시합니다:

땅의 소유: 농경과 정착생활로 인해 생긴 경계가 분쟁을 유발했습니다.

언어의 출현: 추상적 사고를 가능케 한 언어가 환상의 공동체 개념을 만들어냈습니다.

집단 정체성: 신화와 종교에 의해 강화된 집단의 정체성이 외부를 향한 적의와 공격성을 증폭시켰습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무리 생활을 하는 영장류는 일반 포유류보다 폭력으로 인한 사망률이 두 배 정도 높지만, 인간의 경우 문명화 이후 이 비율이 10~20배나 급증했다고 합니다.

인간만의 특성과 사회성

저자는 초기 인류가 개발한 독특한 이동 양식(직립 이족 보행)과 사회성(근친상간 금지를 통한 가족 형성)이 인간 특유의 폭력을 발전시키는 기반이 되었다고 주장합니다.

인간의 사회성을 떠받치는 특징으로는 공동육아, 함께 먹기, 근친상간 금지, 대면 커뮤니케이션, 제3자의 중재, 언어를 통한 대화, 음악을 통한 감정 공유 등이 있습니다. 이러한 특성들이 인간만의 복잡한 사회구조를 만들었고, 이는 폭력의 양상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책의 학문적 가치와 접근 방식

『인간 폭력의 기원』은 행동주의적이고 진화론적 관점에서 인간 폭력을 분석합니다. 저자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가설을 설정하고 관련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통계를 제시하는 과학적 방법론을 사용합니다. 이는 단순한 추측이나 철학적 사변이 아닌, 실증적 데이터에 기반한 분석이라는 점에서 학문적 가치가 큽니다.

감상평: 인간성에 대한 근본적 성찰

이 책은 단순히 폭력의 기원을 탐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서경식 도쿄케이자이대학 교수는 이 책에 대해 "책에서 관철되고 있는 것은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지적 성찰, 그리고 어떻게 하면 평화를 이룰 수 있는가 하는 진지한 문제의식"이라고 평가했습니다.

특히 인상적인 점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와 베를린동물원의 보노보 관찰을 비교한 일화입니다. 인간은 자신을 다른 동물과 구분하며 우월하다고 생각하지만, 동물은 인간과 같은 무의미한 대량 살육을 저지르지 않습니다. 이러한 대비는 인간성에 대한 깊은 성찰로 이어집니다.

책은 인간의 폭력성이 우리의 본성이 아니라 문명의 산물임을 보여줌으로써, 평화로운 공존의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인간은 자신의 진화적 역사와 다른 영장류와의 공통점을 이해함으로써 폭력을 줄이고 평화를 구축할 수 있는 지혜를 얻을 수 있다는 메시지가 책 전체에 흐릅니다.

결론

『인간 폭력의 기원』은 인류학, 영장류학, 진화생물학을 아우르는 학제간 연구의 훌륭한 사례입니다. 저자 야마기와 주이치의 40년 연구 경험과 풍부한 현장 관찰은 인간 폭력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공합니다.

특히 인간의 폭력성이 동물적 본성이 아닌 문명화 과정에서 형성되었다는 주장은, 폭력이 불가피한 것이 아니라 사회문화적으로 형성된 것임을 시사합니다. 이는 폭력을 줄이고 평화로운 공존을 모색하는 현대사회에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합니다.

다양한 사례와 과학적 근거를 통해 인간 폭력의 실체를 밝히는 이 책은, 인류학에 관심 있는 독자뿐 아니라 평화와 공존의 가치를 추구하는 모든 이들에게 일독을 권할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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