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파의 대명사인 이완용의 증손자 이윤형이 증조부 명의 토지를 되찾아 30억원에 매각한 뒤 캐나다로 이민을 떠난 사실이 최근 알려지면서 국민적 공분을 사고 있다.
이는 광복 후 8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친일재산의 국가 환수가 완전히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왜 친일파 후손들의 재산을 국가가 효과적으로 환수하지 못하는 것일까? 관련 소송의 판례를 살펴보고, 법적 보완책을 모색해보자.
이완용 증손자 사례와 친일재산 환수의 실패
이윤형은 1997년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 545·546·608번지 일대 토지 2,354㎡(약 712평)를 재개발업자 2명에게 매각했다. 이 부지는 원래 이완용 명의였으나, 해방 후 국가에 의해 환수되었다가 이윤형이 제기한 소송에서 승소함에 따라 다시 돌려받은 것이다.
당시 일대 땅값이 3.3㎡당 450만원 안팎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매도금액은 3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친일재산의 규모와 환수 현황
친일재산조사위원회 보고서에 따르면 일제 강점기 당시 이완용이 보유한 부동산은 전국적으로 총 2,233만 4,954㎡(약 676만 8,168평) 규모로, 서울 여의도 면적의 5.4배에 달한다.
그러나 조사위가 환수한 부동산은 이완용 소유 부동산의 0.05%에 불과한 1만 928㎡(약 3,300평)에 그쳤다. 이완용이 해방 전 이 땅 대부분을 현금화했고, 환수된 상당수의 토지 중 일부는 자손들이 제기한 반환 소송을 통해 다시 가져갔기 때문이다.
친일재산 환수의 법적 근거와 한계
친일재산 환수 특별법의 제정
2005년 12월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이하 친일재산귀속법)'이 시행되면서 친일재산 환수를 위한 법적 근거가 마련되었다.
이 법은 러·일 전쟁 개전 시(1904.2)부터 광복 시까지 일제에 협력한 대가로 취득하거나 이를 상속받은 재산 또는 친일재산임을 알면서 유증·증여받은 재산을 '친일재산'으로 규정하고 있다.
특히 법 제3조 1항은 "친일재산은 그 취득ㆍ증여 등 원인행위시에 이를 국가의 소유로 한다"고 명시하고 있어, 소급입법 문제가 제기되었다.
그러나 2011년 3월 헌법재판소는 이 조항이 비록 진정소급입법에 해당하지만, "예외적으로 국민이 소급입법을 예상할 수 있었던 경우와 같이 소급입법이 정당화되는 경우에는 허용될 수 있다"고 판시하며 합헌 결정을 내렸다.
친일재산 환수의 주요 장애요인
친일재산 환수가 어려운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 법 제정의 지연: 광복 이후 관련법 제정까지 너무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이완용 증손자의 소송은 1997년에 승소했는데, 이는 친일재산귀속법 제정(2005년) 이전이었기 때문에 소급 적용이 불가능했다.
- 선의의 제3자 보호 조항: 친일재산귀속법은 친일재산인지 몰랐던 '선의의 제3자'가 취득한 경우 환수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 이 조항 때문에 친일파 이해승의 손자 이우영 그랜드힐튼호텔 회장을 상대로 한 소송에서 정부가 패소했다.
- 증거 입증의 어려움: 해방 이후 오랜 세월이 흘러 친일행위의 대가로 얻은 친일재산을 구별해 입증하는 것이 사실상 어렵다. 이를 고려해 특별법은 친일행위자가 취득한 재산을 친일행위의 대가로 취득한 것으로 '추정'하는 조항을 두었지만, 이 추정을 뒤집는 주장도 가능하다.
- 재산의 조기 처분: 많은 친일파들이 해방 전에 이미 재산을 현금화했거나 제3자에게 넘겼다.
주요 판례 분석
승소 사례
- 이기용 후손 소송(2021): 법무부가 친일파 이기용 후손이 물려받은 토지에 대해 환수 소송을 제기해 최종 승소했다.
- 조중응 후손 소송(2008): 서울행정법원은 조선총독부 중추원 고문을 지낸 조중응의 후손들이 경기 남양주 일대의 토지 6천500여㎡를 국가에 귀속시킨 결정을 취소해달라는 소송에서 "특별법의 추정 규정은 해방 이후 오랜 세월이 흘러 친일행위의 대가로 얻은 친일재산을 구별해 입증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점을 고려한 것"이라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패소 사례
- 이완용 후손 소송(1997): 이완용 후손들이 낸 토지 반환소송의 항소심에서 서울고법은 "반민족행위자나 그의 후손이라고 하여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 재산권을 박탈하거나 법의 보호를 거부하는 것은 법치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원고 승소 판결했다.
- 이해승 손자 소송(2023): 법원은 1960년대 토지를 매입한 제일은행이 친일재산인 줄 몰랐던 '선의의 제3자'라고 보고, 토지를 다시 국가 소유로 되돌리면 제일은행이 정당하게 취득한 권리를 해칠 수 있다고 판단해 정부 패소 판결을 내렸다.
친일재산 환수를 위한 법적 보완책
1. 법적 근거 강화
현행 친일재산귀속법은 '친일행위의 대가'로 취득한 재산으로 범위가 한정되어 있다. 이를 친일행위자가 취득한 모든 재산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또한, 친일행위자 정의의 범위를 넓혀 더 많은 친일행위자의 재산을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
2. 입증책임의 전환 강화
현재는 친일행위자가 취득한 재산을 친일행위의 대가로 '추정'하는 방식인데, 이를 더 강화하여 친일행위자의 후손이 해당 재산이 친일행위와 무관하다는 것을 명확히 입증해야만 환수를 면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
3. '선의의 제3자' 조항 재검토
현재 법률상 '선의의 제3자'를 보호하는 조항으로 인해 환수가 어려운 경우가 있다. 이 조항을 재검토하여 공익과 사익의 균형을 더 세밀하게 조정할 필요가 있다.
4. 친일재산 신고 및 발굴 강화
아직 드러나지 않은 친일재산을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국민들의 제보를 활성화하는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5. 친일재산 환수 전담 기구 재설치
2010년 활동을 종료한 친일재산조사위원회와 같은 전담 기구를 재설치하여 지속적인 조사와 환수 활동을 이어갈 필요가 있다.
친일재산 환수의 의의
친일재산 환수는 단순한 재산권 문제를 넘어 역사적 정의 구현의 문제다.
친일재산 환수는 "과거사 청산 작업의 일환으로 입법목적이 정당하고, 친일반민족행위자의 후손이 스스로 경제적 활동으로 취득한 재산이나 친일재산 이외의 상속재산까지 국가에 귀속시키는 것은 아니므로 연좌제 금지원칙에 반한다고 할 수 없다"는 법원의 판단이 있었다.
법무부는 "친일재산 환수는 친일청산의 마무리이자 3.1운동의 헌법 이념과 역사적 정의 구현이라는 의미가 있다"고 밝히며, 친일재산 환수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결론
이완용 증손자의 '30억 돈벼락' 사례는 우리 사회가 아직 일제 강점기의 친일 행적과 그로 인한 불법적 재산축적 문제를 완전히 청산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친일재산 환수는 단순히 재산을 회수하는 차원을 넘어 우리 헌법이 표방하는 3·1운동의 정신과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는 역사적 과업이다.
그간의 소송 과정과 판례를 면밀히 검토하여 법적 보완장치를 마련하고, 아직 드러나지 않은 친일재산을 지속적으로 발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는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고 미래 세대에게 올바른 역사 인식을 심어주는 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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