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왕실의 역사는 화려함 뒤에 숨겨진 충격적인 스캔들과 비극적 사건들로 가득합니다. 왕실의 권력과 음모가 뒤얽힌 다섯 가지 역사적 사건을 통해 영국 왕실의 어두운 이면을 살펴보겠습니다.
컴벌랜드 공작의 밤중 살인 미스터리
1810년 5월 31일 밤, 세인트 제임스 궁전에서는 "살해당했다!"라는 비명이 울려퍼졌습니다. 이 소름끼치는 외침은 조지 3세의 다섯 번째 아들인 컴벌랜드 공작 어니스트(Ernest, Duke of Cumberland)의 침실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공작은 잠에서 깨어나 누군가에게 머리를 가격당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는 머리, 목, 허벅지에 심각한 상처를 입은 채 궁전을 수색하러 나섰고, 결국 그의 시종인 조셉 셀리스(Joseph Sellis)가 목이 베인 채 자신의 방에서 사망한 것을 발견했습니다.
공식 조사에서는 셀리스가 공작을 암살하려 시도했다가 실패한 후 자살했다고 결론지었습니다. 하지만 대중들은 이 설명을 의심했습니다. 당시 '악한 공작'이라 불리며 최악의 평판을 가졌던 컴벌랜드가 무고할 리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1832년 출판된 책에서는 공작이 셀리스를 살해했으며, 그 이유는 공작에 대한 협박이나 간통 혐의를 덮기 위함이었다고 주장했습니다.
놀랍게도 이 사건 이후 궁전에서는 혈흔이 남아있는 공작의 방을 일반인들에게 공개하기까지 했습니다. 이 미스터리는 수십 년이 지난 후에도 영국인들 사이에서 끊임없는 추측을 낳았습니다.
제임스 6세와 마녀 사냥의 공포
1590년,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6세는 지역 산파인 아그네스 샘슨(Agnes Sampson)과 운명적인 만남을 가졌습니다. 왕은 샘슨이 마녀인지, 그리고 그가 덴마크에서 스코틀랜드로 귀국하는 배를 침몰시키려 했는지 알아내고자 했습니다.
제임스 6세는 1589년 덴마크 방문 후 마녀 사냥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고, 항해 중 만난 폭풍이 마법의 결과라고 믿게 되었습니다. 샘슨은 처음에 모든 혐의를 부인했지만, 끔찍한 고문 - 머리카락을 모두 밀고, 머리에 로프로 마찰 화상을 입히고, 엄지고문과 구타, 강간까지 - 을 당한 후 마침내 악마를 만나 "그를 주인으로 받아들였다"고 자백했습니다.
왕은 직접 샘슨을 심문했고, 샘슨이 왕의 결혼식 밤에 그가 왕비에게 했던 말을 알고 있다고 말하자 즉시 그녀의 처형을 명령했습니다. 제임스 6세는 마녀들을 직접 고문하는 것을 감독했으며, 1597년에는 자신의 마녀 사냥 지침서인 '데모놀로지(Daemonologie)'를 저술했습니다. 이 책은 나중에 셰익스피어의 '맥베스'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흥미롭게도 제임스 6세는 이후 더 회의적인 견해를 갖게 되어 마녀 사냥에 대한 상설 위원회를 폐지하고 중앙 법원의 기소를 제한했습니다.
찰스 2세와 두개골 약
과학에 관심이 많았던 찰스 2세는 화이트홀 궁전에 물약과 병들로 가득한 실험실을 만들었습니다. 그의 탐구 중 하나는 장수의 비결을 찾는 것이었고, 그 답이 '두개골 약'이라고 결정했습니다. 이 약은 폭력적이거나 놀라운 죽음을 맞은 사람의 두개골을 갈아서 다른 재료들과 섞어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두개골 물약'도 그를 구하지 못했습니다. 1685년 2월 1일, 찰스 2세는 화이트홀에서 발이 아픈 채로 잠자리에 들었고, 다음 날 아침 발작을 일으켜 쓰러졌습니다. 왕립 의사 대학에서 온 십여 명의 의사들이 궁전에 도착해 다양한 치료를 시도했습니다.
의사들은 왕의 팔을 칼로 베어 16온스의 피를 뽑았고, 구토제와 관장, 하제 등을 투여했습니다. 또한 뜨거운 컵과 쇠로 화상을 입혀 물집이 생기게 했습니다. 다른 치료법으로는 머리를 깎고 두피에 물집을 만들고, 콧구멍에 자극성 가루를 넣고, 위에 카우슬립 꽃을 바르고, 발에는 비둘기 배설물을 바르기까지 했습니다.
결국 찰스 2세는 1685년 2월 6일, 54세의 나이로 사망했으며, 죽기 전 "죽는 데 너무 오래 걸려 미안하다"고 사과했다고 합니다.
앤 불린의 운명적인 선물
1526년, 헨리 8세는 앤 불린에게 사랑에 빠졌고 그녀에게 편지를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앤은 유년기 집인 히버 캐슬에 은신했지만, 1527년 새해를 맞아 헨리에게 운명적인 선물을 보내기로 결정했습니다.
앤은 값비싼 다이아몬드와 파도에 휩쓸리는 '외로운 처녀' 형상이 있는 보석 장식 배를 선물했습니다. 헨리는 이 선물을 앤이 자신의 구애에 응하겠다는 큰 승낙으로 해석했고, 앤을 자신의 왕비로 만들기 위한 사명을 시작했습니다. 이 과정은 결국 앤이 런던 탑에서 처형되는 비극으로 끝났습니다.
헨리도 앤에게 다양한 선물을 주었습니다. 초기 선물 중 하나는 장식용 귀 파는 숟가락, 손톱 클리너, 이쑤시개가 들어있는 금으로 된 권총 모양의 작은 펜던트였습니다. 1532년 헨리는 앤을 위해 왕실 보석을 재설정하고 아라곤의 캐서린에게서 공식 보석을 빼앗았습니다. 캐서린은 "기독교의 스캔들"을 장식하기 위해 자신의 보석을 사용하는 것은 죄가 될 것이라고 응답했습니다.
에드워드 8세와 사라진 왕관
궁전에서는 런던 지하철보다 더 많은 분실물이 발생합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분실물은 아마도 왕관일 것입니다. 1936년 에드워드 8세가 윈저에서 퇴위할 때, 그는 왕자의 관(Prince of Wales Coronet)을 포함한 왕실 물품들을 가지고 떠났습니다. 이 왕관은 1972년 에드워드의 사망 때까지 영국으로 반환되지 않았습니다.
이로 인해 현 영국 왕 찰스 3세는 1969년 웨일스 왕자로 즉위할 때 특별히 제작된 왕관을 써야 했습니다. 카에르나르본 성에서 열린 이 TV 행사에서 사용된 왕관은 세계를 상징하는 금색 구로 장식되었는데, 놀랍게도 이 구는 실제로 금도금된 탁구공이었다고 합니다.
영국 왕실의 역사는 화려한 외관 뒤에 숨겨진 충격적인 비밀과 스캔들로 가득합니다. 컴벌랜드 공작의 미스터리한 살인 사건부터 찰스 2세의 기이한 의학 실험, 앤 불린의 운명적인 선물까지, 이러한 역사적 사건들은 권력과 특권의 세계에서도 인간의 약점과 욕망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보여줍니다. 왕실의 역사는 단순한 화려함이 아닌, 인간 본성의 복잡성을 반영하는 거울과도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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