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모노』는 2025년 3월 28일 창비 출판사에서 발행된 성해나 작가의 두 번째 소설집으로, 현대 한국 문학계에서 가장 빛나는 새로운 목소리 중 하나로 주목받고 있는 작품입니다.
일본어로 '진짜'를 뜻하는 '本物'(혼모노)이라는 제목에서 암시하듯, 이 소설집은 진짜와 가짜 사이의 경계, 정체성의 문제, 그리고 우리 사회의 다양한 층위에서 벌어지는 갈등을 예리하게 포착해냅니다.
주목받는 작가, 성해나
성해나는 201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첫 소설집 『빛을 걷으면 빛』과 장편소설 『두고 온 여름』을 통해 문학계의 주목을 받았으며, 2024년 「혼모노」로 이효석문학상 우수작품상과 젊은작가상을, 2025년 「길티 클럽: 호랑이 만지기」로 젊은작가상을 연달아 수상하며 그 재능을 인정받았습니다. 또한 온라인 서점 예스24가 선정한 '2024 한국문학의 미래가 될 젊은 작가' 투표에서 1위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습니다.
작가 스스로는 "예리한 발톱으로 문장을 낚고, 너른 시선으로 사회의 아픔을 포착하며 열린 귀로 멀리 떨어진 이들의 이야기까지 경청하고 싶다"는 창작 의지를 밝히고 있습니다. 그의 작품은 치밀한 취재, 정교한 구성, 입체적인 캐릭터 위에 강렬하고도 서늘한 서사를 얹어 새로운 세대의 리얼리즘을 개척하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혼모노』의 주제와 수록 작품
『혼모노』에는 '길티 클럽: 호랑이 만지기', '스무드', '혼모노', '구의 집: 갈월동 98번지', '우호적 감정', '잉태기', '메탈' 등 총 7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이 작품들은 모두 진짜와 가짜의 경계를 넘나드는 강렬한 이야기들로, 서로 대비되는 인물들이 맞부딪히는 순간의 불꽃을 담아냅니다.
알라딘 책 소개에서는 이 소설집을 "압도하는 어떤 영화를 보면 영화의 기에 눌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와중에 숨을 골라야 하는" 느낌이라고 표현하며, 교수자와 연주자가 충돌하는 영화 <위플래시>의 속도감, 홀린 듯한 굿판이 펼쳐지는 <곡성>의 광기가 옮아오는 듯한 경험을 선사한다고 소개합니다.
표제작 '혼모노'의 심층 분석
소설집의 표제작인 '혼모노'는 삼십 년간 박수무당(남자 무당)으로 살아온 문수가 어느 날 갑자기 신령이 떠나면서 겪게 되는 정체성의 위기를 그립니다. 문수는 삼십 년간 영험한 무당으로서 자리를 지켜왔지만, 두 달 전 어느 굿판에서 갑자기 신령들이 아무런 신탁도 내려주지 않았고, 그 후 앞집으로 스무 살 남짓의 신애기가 이사를 오면서 상황은 더욱 복잡해집니다.
박수의 오랜 신령인 장수 할멈이 신애기에게 옮겨간 것으로 보이며, 신애기는 문수를 "존나 흉내만 내는 놈"이라고 모욕합니다. 이는 문수에게 깊은 상처가 되는데, 그는 삼십 년간 "진짜 무당"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구축해왔기 때문입니다. 장수 할멈은 문수에게 인간문화재를 약속했지만, 이제 그 약속은 신애기에게로 옮겨갔습니다.
소설의 절정에서 문수는 더 이상 신접을 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작두를 타는 과감한 선택을 합니다. 피를 뚝뚝 떨어뜨리면서도 멈추지 않는 모습은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을 상징합니다. "삼십 년 박수 인생에 이런 순간이 있었던가. 누구를 위해 살을 풀고 명을 비는 것은 이제 중요치 않다. 명예도, 젊음도, 시기도, 반목도, 진짜와 가짜까지도"라는 독백을 통해 문수의 내적 변화가 드러납니다.
결국 문수는 "가벼워진다. 모든 것에서 놓여나듯. 이제야 진짜 가짜가 된 듯"이라고 말하며, 신령에 의존하지 않고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는 자유를 찾아냅니다. 이는 무당으로서는 가짜일지 모르지만, 자기 자신으로서는 진정한 진짜가 되는 역설적인 과정을 그려냅니다.
기타 수록 작품 분석
소설집의 문을 여는 작품 '길티 클럽: 호랑이 만지기'는 윤리적 문제로 질타받는 영화감독 김곤을 좋아하는 화자가 주인공입니다. 감독의 팬 모임인 '길티 클럽'에 가입한 화자는 '찐(진짜) 팬'이 되고자 하지만, 김곤이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고 사과하자 복잡한 감정을 느낍니다. 이 작품은 우상과 팬덤 문화, 그리고 도덕적 판단의 문제를 다룹니다.
'스무드'에서는 세계적인 미술가 제프의 에이전트이자 재미 한인 3세인 듀이가 한국을 방문해 태극기 부대와 조우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외부와 단절된 부르주아식 아파트에서부터 듀이가 축제라고 오해한 극우 집회 현장까지, 반쪽의 대한민국만을 경험하는 이방인의 시선을 통해 우리 사회의 양면성을 드러냅니다.
작품의 문학적 특징과 의미
성해나의 소설은 진정성과 가식, 존재와 정체성, 사회적 갈등과 개인의 내면 사이의 긴장을 탐구합니다. 특히 『혼모노』에서는 진짜와 가짜의 경계가 흐려진 시대에, 우리가 지역, 정치, 세대 등 다양한 기준으로 선을 긋고 서로를 나누며 살아가는 현실을 비판적으로 바라봅니다.
작품 속 캐릭터들은 모두 자신만의 방식으로 진짜를 추구하지만, 그 과정에서 겪는 혼란과 갈등, 그리고 최종적으로 도달하는 깨달음은 독자들에게 깊은 사유의 기회를 제공합니다. 소설은 단순히 이분법적으로 젠더와 세대를 대립시키는 대신, 이들이 공유하는 씁쓸함과 인간적 연대 가능성을 모색합니다.
배우 박정민은 이 소설집에 대해 "넷플릭스 왜 보냐, 성해나 책 보면 되는데"라는 극찬을 남겼으며, 브런치 리뷰에서는 "요즘 가장 재밌게 읽은 소설"이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각 소설이 품은 자극이 "트레드밀 위에서 한참 달리다 평지를 처음 디딜 때의 멀미처럼" 강렬하다는 표현도 눈에 띕니다.
결론
『혼모노』는 단순한 이야기 모음을 넘어, 현대 사회의 복잡한 층위를 예리하게 포착하고 인간 존재의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작품입니다. 성해나는 치밀한 서사 구성과 선명한 캐릭터를 통해 독자들을 자신만의 문학적 세계로 끌어들이며,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와 사회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제공합니다.
2024·2025 젊은작가상, 2024 이효석문학상 우수 작품상 등을 수상하며 문학적 성취를 인정받은 이 작품집은, 한국 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는 성해나의 역량을 여실히 보여주는 걸작입니다. "진짜는 진짜를 알아보는 법"이라는 말처럼, 진정한 문학적 감수성을 지닌 독자라면 이 작품집의 가치를 충분히 알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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