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시 동탄의 한 아파트에서 가정폭력 신고 이력이 있는 30대 남성이 사실혼 관계의 여성을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비극적 사건이 발생했다.
이번 사건은 가정폭력 신고 이후 경찰의 보호조치에도 불구하고 발생한 사건으로, 현행 가정폭력 예방 시스템의 한계와 친밀한 관계에서의 폭력이 극단적 결과로 이어지는 사회적 문제를 다시 한번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이러한 비극을 예방하기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한 시점이다.
사건 개요: 보호조치에도 불구하고 발생한 비극
2025년 5월 12일 오전 10시 40분경, 경기도 화성시 동탄신도시의 한 아파트 단지 주민 통행로에서 30대 남성 A씨가 30대 여성 B씨를 흉기로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목격자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구급대원들이 B씨를 병원으로 이송했으나, 결국 B씨는 사망했다. A씨는 범행 후 자신의 아파트로 도주했으며, 오전 10시 44분경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
이들은 사실혼 관계였으며, B씨는 지난 3월 A씨를 가정폭력으로 신고한 이력이 있었다. 경찰은 당시 B씨에게 스마트 워치를 지급하고 두 사람을 분리 조치하는 등 안전조치를 취했으나, B씨는 사건 당일 스마트 워치를 통한 신고를 하지 못한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두 사람의 시신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부검 의뢰하고, 주변인 조사와 CCTV 분석을 통해 정확한 범행 동기와 경위를 조사 중이다.
국내 친밀한 관계에서의 여성 살해 현황
이번 사건은 국내에서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친밀한 관계에서의 폭력'이 극단적 결과로 이어진 대표적 사례다. 한국여성의전화가 발표한 '2024년 분노의 게이지'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한 해 동안 남편이나 애인 등 '친밀한 관계의 남성 파트너'에 의해 살해된 여성은 최소 181명이었다. 이는 이틀에 한 명꼴로 여성이 친밀한 남성 파트너에게 살해되고 있다는 충격적인 통계다.
국회입법조사처의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에는 138명, 2024년에는 180명으로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2009년부터 2024년까지 총 16년간 친밀한 관계의 남성 파트너에 의해 살해된 여성은 최소 1,560명에 달하며, 살인미수까지 포함하면 3,613명, 주변인 피해자까지 포함하면 4,423명이라는 엄청난 수치에 이른다.
특히 주목할 점은 살해당한 피해자나 피해 주변인의 17.5%(114명)가 이미 경찰에 신고하거나 피해자 보호조치를 받는 상태였음에도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했다는 것이다. 이는 현행 가정폭력 피해자 보호 시스템의 실효성에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는 대목이다.
유사 사례: 끊이지 않는 친밀한 관계에서의 폭력
최근 들어 비슷한 사건들이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다. 지난 5월 4일 이천시의 한 오피스텔에서도 30대 남성이 옛 애인과 그의 남자친구를 흉기로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남성은 범행 후 가족에게 범행 사실을 털어놓고 경찰서에 자수했으며, 지난 11일 살인 혐의로 구속영장이 발부되었다.
유엔 여성기구와 유엔 마약범죄사무소의 '젠더 관련 여성살해'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에서 여성 8만1,100명이 살해되었고, 이 중 56%인 4만5,000명이 남편이나 파트너, 또는 다른 가족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이러한 통계는 최근 10년간 큰 변화 없이 유지되고 있어 전 세계적으로 여성들이 가정이라는 공간에서 심각한 위험에 노출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현행 가정폭력 대응 시스템의 한계
이번 사건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은 피해자가 이미 가정폭력으로 신고를 했고, 경찰이 스마트 워치를 지급하는 등 안전조치를 취했음에도 불구하고 비극적인 결과를 막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는 현행 가정폭력 대응 시스템이 가진 여러 한계점을 드러낸다.
첫째, 스마트 워치와 같은 기술적 보호 수단이 실제 위기 상황에서 효과적으로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 국회입법조사처 보고서에 따르면 스마트 워치는 매우 제한적인 상황에서만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으며, 그마저도 충분한 기간 동안 지급되지 않는 문제가 있다.
둘째, 가정폭력 사건에 대한 반의사불벌죄 적용이 피해자를 더 취약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친밀한 관계에서는 가해자에게 피해자의 정보가 노출되어 있어 처벌 의사를 표현하기 어렵고, 이로 인해 피해자가 오히려 위험에 처하는 경우가 많다.
셋째, 한국여성의전화의 조사에 따르면 가정폭력 피해자가 겪는 '2차 피해'의 71.1%는 가족이나 수사·재판 기관으로부터 유발된다. 일선 수사기관에서 가정폭력을 '가정사'나 '부부싸움'으로 치부하는 등 젠더 감수성이 결여된 대응이 피해자 보호를 어렵게 한다.
해외의 가정폭력 살인 예방 대책: '사망검토제'
이러한 반복적인 비극을 방지하기 위해 최근 국내에서도 '가정폭력 사망검토제' 도입이 논의되고 있다. 사망검토제란 가정폭력 등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사망사건의 유형과 원인, 수사기관의 개입과 관련 기관의 조치가 실패한 이유 등을 철저히 조사하여 미래의 또 다른 살인을 예방하고자 하는 제도이다.
이 제도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1990년대에 최초로 도입된 이후 현재 미국, 캐나다, 영국, 호주, 스웨덴, 포르투갈 등 여러 국가에서 시행되고 있다. 영국은 2011년부터 16세 이상의 가구구성원이나 배우자·파트너·연인 관계에 의한 살인사건 사망검토제를 시행하고 있으며, 2024년부터는 친밀한 관계를 포함한 가정폭력으로 인한 자살사건에 대해서도 면밀한 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미국 뉴욕주는 법률에 가정폭력 사망검토팀 설치 및 운영에 관한 사항을 규정하고, 살인사건 및 살인미수사건을 검토 대상에 포함하고 있다. 또한 2025년에는 친밀한 배우자·파트너 살인사건과 관련된 11개의 위험신호를 식별하여 제시하였다.
가정폭력 예방을 위한 정책적 제안
국내에서도 이러한 가정폭력 사망검토제의 도입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가정폭력방지법에 사망검토제 도입을 명시하고, 가정폭력 규율 대상에 교제관계를 포함하는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현재 제22대 국회에는 3건의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개정법률안'이 발의된 상태로, 이를 조속히 통과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전진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은 가정폭력방지법 개정안 발의를 준비 중으로, 사망사건 검토위원회 설치·운영 등의 내용이 담길 예정이다.
정부가 2018년 발표한 가정폭력 방지 대책에는 피해자 안전 및 인권보호 강화, 가해자 처벌 강화 및 재범방지, 피해자 지원 강화, 예방 및 인식개선 등의 정책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서 보듯 이러한 대책들이 실효성을 거두지 못하고 있어 보다 강화된 조치가 필요하다.
구체적으로는 임시조치 위반 시 과태료가 아닌 징역 또는 벌금을 부과하는 제재 강화, 접근금지 내용을 특정 장소에서 피해자 중심으로 변경, 자녀 면접교섭권 제한 등 피해자 보호와 권익을 강화하는 조치가 요구된다.
가정폭력 인식 개선과 사회적 과제
가정폭력 방지를 위해서는 법제도 개선뿐만 아니라 사회적 인식 변화도 중요하다. 여성폭력은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구조적 문제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한국여성의전화는 "성차별의 극단적인 현상인 여성 살해를 성평등 관점에서 바라보고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구조적 문제로서 여성폭력 근절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가정폭력 피해자에 대한 2차 피해를 방지하고, 가정폭력을 '가정사'로 치부하는 인식을 개선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가정폭력 피해자를 찾아가는 현장상담과 사례 관리 강화, 긴급피난처 등 피해자 일시보호 기능 내실화, 자립지원금 지원, 개인정보 보호 강화 등 피해자 지원 시스템의 전반적인 개선이 필요하다.
결론: 더 이상의 비극을 막기 위한 사회적 책임
화성 동탄에서 발생한 이번 사건은 우리 사회가 직면한 가정폭력과 친밀한 관계에서의 폭력이라는 심각한 문제를 다시금 일깨우고 있다. 매일같이 발생하는 이러한 비극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개별 사건에 대한 대응을 넘어, 우리 사회 전체가 폭력을 용인하지 않는 문화를 조성하고, 실효성 있는 피해자 보호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국회입법조사처가 제안한 '가정폭력 사망검토제'의 도입과 함께, 강압적 통제 금지 규정 마련, 교제폭력·가정폭력 가해자에 대한 GPS 감시제 도입, 친밀한 관계 살인에 대한 정교한 데이터 구축, 반의사불벌 배제 및 위험도 평가 개선, 여성폭력 지휘 총괄 기구의 역할 및 권한 강화 등 종합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가정폭력은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문제라는 인식 하에, 피해자를 보호하고 지원하는 데 모든 사회 구성원이 관심을 가져야 할 때이다. 더 이상의 비극적 사건이 발생하지 않도록 우리 모두의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가정폭력 위기 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
- 가정폭력 상담전화: 1366
- 경찰신고: 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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