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하얼빈'은 우민호 감독이 연출하고 현빈, 박정민, 조우진 등이 출연한 역사 액션 영화로, 1909년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처단 사건을 새로운 시각으로 그려낸 작품입니다. 2024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개봉한 이 영화는 안중근 의사와 독립투사들의 투쟁과 희생을 스크린에 담아냈습니다.
영화 개요와 제작 배경
'하얼빈'은 약 300억원의 제작비가 투입된 대작으로, 엔터테인먼트 회사 하이브에서 제작하고 CJ ENM이 배급을 맡았습니다. 우민호 감독은 '내부자들', '마약왕', '남산의 부장들' 등 사회 비판적 작품을 연출해온 감독으로, 이번에는 역사적 인물인 안중근 의사의 이야기를 선택했습니다.
영화는 1908년 함경북도 신아산에서 안중근이 이끄는 독립군들이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승리한 후, 만국공법에 따라 전쟁포로인 일본인들을 풀어주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이후 일본군의 기습 공격으로 의군들을 잃게 된 안중근은 독립군 내부의 균열을 경험하며 '늙은 늑대' 이토 히로부미 암살을 결심하게 됩니다.
주요 출연진
영화 '하얼빈'의 주요 출연진은 다음과 같습니다:
현빈: 안중근 역
박정민: 우덕순 역 (안중근과 함께하는 독립투사)
조우진: 김상현 역 (독립투사)
전여빈: 공부인 역 (독립투사)
유재명: 최재형 역 (안중근의 조력자)
박훈: 모리 다쓰오 역 (일본제국 군인)
이동욱 등 다수의 배우가 출연
흥행 실적과 비평
'하얼빈'은 2025년 1월 16일 기준으로 428만 2,201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23일째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초반의 기세에 비해 관객 수가 감소하는 추세를 보였습니다. 개봉 9일차까지는 매일 최소 10만 명 이상의 관객을 기록했으나, 1월 6일부터는 5만 명대로 감소했고, 이후 평일에는 5만 명 미만으로 떨어졌습니다.
제작비 300억원을 고려할 때 손익분기점은 680만 명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252만 명의 관객을 추가로 동원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설날 특수를 고려하더라도 손익분기점 달성은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었습니다.
비평가들의 평가는 다양했습니다. 씨네21 평론가들은 "어지럽고 비장하게 짓누른다"(박평식), "표정, 그것을 대하는 빛과 그림자가 아름다움을 넘어 숭고함을 득한다"(이용철), "영웅의 이미지에 압도돼 간과됐던 인간적 고뇌에 첩보물의 외피를 둘러"(임수연), "안중근이 차가운 누아르를 만나 뜨겁게 타오르다"(오진우) 등의 평을 남겼습니다.
안중근 의사의 생애
안중근(1879년 9월 2일~1910년 3월 26일)은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난 독립운동가이자, 항일 의병장으로 대한의군 참모중장을 역임했습니다.
1904년 러일전쟁이 발발하자 안중근은 상해로 망명했으나, 프랑스인 신부의 조언으로 실력 양성을 통한 독립운동의 중요성을 깨닫고 귀국했습니다. 1906년에는 진남포 용정동에 석탄상회를 경영하고, 삼흥학교와 돈의학교를 설립·인수하여 교육에 전념했습니다.
1907년 안중근은 국채보상기성회 관서지부장으로 활동하며 반일운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했습니다. 한일신협약 체결 후에는 북간도를 거쳐 블라디보스토크로 망명하여 계동청년회의 임시사찰로 활동했습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안중근은 이범윤, 엄인섭, 김기룡 등과 함께 의병부대를 조직했고, 대한의군참모중장으로 임명되어 두만강을 건너 일본군과 전투를 벌였습니다.
이토 히로부미 처단 사건의 실제와 영화 속 재현
실제 역사적 사건
1909년 안중근은 동지 11명과 함께 '동의단지회'라는 비밀 결사를 조직하고, 왼손 네 번째 손가락을 잘라 태극기에 "대한독립"이라는 글자를 피로 써서 독립운동을 위해 헌신할 것을 맹세했습니다.
이토 히로부미가 만주를 방문하여 러시아와 회담을 갖는다는 소식을 들은 안중근은 1909년 10월 21일 블라디보스토크를 출발해 우덕순, 조도선, 유동하와 함께 하얼빈에 도착했습니다. 원래 세 곳에서 암살을 시도하려 했으나 자금 부족으로 하얼빈과 채가구에서만 저격하기로 계획을 수정했습니다.
1909년 10월 26일 오전 9시경, 이토 히로부미가 하얼빈 역에 도착하여 러시아 재무상 블라디미르 코콥초프와 회담한 후, 러시아 수비병을 사열하기 위해 열차에서 내렸을 때 안중근은 총을 발사했습니다. 안중근은 이토 히로부미에게 3발을 명중시키고, 수행원들에게도 총을 발사했습니다.
영화와 실제 역사의 차이점
영화 '하얼빈'에서는 안중근이 신아산 전투에서 승리한 후 일본군 포로를 석방하는 설정을 통해 그의 인도주의적 면모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실제로도 안중근은 의병 활동 중 일본군 포로를 석방했으나, 그 결과 의병 내부에서 신임을 잃고 일본군의 기습 공격을 받았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영화에서는 일본군이 밀정을 통해 작전 내용을 입수하여 안중근 일행을 추적하는 첩보물적 요소가 강조되었습니다. 반면 실제 역사에서는 안중근과 동지들이 비밀리에 계획을 세우고 실행한 과정이 더 중요하게 다루어졌습니다.
안중근 의사의 최후
체포된 안중근은 연행되는 중에도 "코레아 우라(대한 만세)"를 외쳤으며, 여순의 일본 관동도독부 지방법원에서 재판을 받으면서도 당당하게 이토 히로부미의 죄상 15개조를 들며 거사의 이유를 밝혔습니다.
1910년 2월 14일 공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안중근은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의 말에 따라 공소를 포기하고, 여순 감옥에서 「안응칠역사」와 「동양평화론」을 집필하는 데 매진했습니다. 저술이 완성될 때까지 사형 집행을 연기해줄 것을 요청했으나, 일제는 이를 무시하고 1910년 3월 26일 안중근 의사를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했습니다.
영화 '하얼빈'은 독립운동가 안중근의 뜨거운 애국심과 조국 독립을 위한 헌신을 스크린에 생생하게 담아내며, 역사적 인물의 인간적 고뇌와 결단을 현대적 시각으로 재해석한 작품입니다. 비록 상업적 성공 측면에서는 아쉬움이 있었으나, 안중근 의사의 위대한 희생을 다시 한번 기억하게 하는 의미 있는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넷플릭스 한국영화 '계시록' (6) | 2025.04.02 |
---|---|
『영화 보고 오는 길에 글을 썼습니다』 - 김중혁의 77편 영화 에세이 심층분석 (0) | 2025.03.27 |
디즈니 실사영화 '백설공주'를 둘러싼 모든 논란 총정리 (6) | 2025.03.23 |
진 헤크먼의 유산과 〈The French Connection〉의 영화사적 의미 (2) | 2025.03.20 |
넷플릭스 영화 '일렉트릭 스테이트' 심층 분석: 캐릭터, 메시지, 그리고 의미 (15) | 2025.03.19 |